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한때 스테이블코인을 포트폴리오의 안전지대로 여겼습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하루에 10~20%씩 출렁이는 자산들 사이에서, 1달러에 고정된 USDT나 USDC는 마치 폭풍 속의 항구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2022년, 그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눈앞에서 확인했습니다.

목차
-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 테라·루나 사태가 남긴 교훈, 디페깅 리스크의 실체
- 규제는 어디까지 왔고, 투자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유로 등 법정화폐나 실물 자산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입니다. 구조는 단순합니다. 이용자가 1달러를 맡기면 발행사는 동일한 가치의 토큰 1개를 발행하고, 그 준비금을 국채나 예금 같은 안전자산으로 운용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 즉 시뇨리지(Seigniorage)입니다. 시뇨리지란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말하는데, 전통적으로는 중앙은행이나 국가가 이 수익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 구조에서는 이 수익 대부분이 민간 발행사의 몫이 됩니다. 테더(Tether)의 경우 2023년 한 해에만 62억 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이 준비금 운용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블룸버그).
스테이블코인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 법정화폐 담보형: USDT(테더), USDC처럼 실제 달러를 준비금으로 보유하는 방식
- 암호화폐 담보형: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방식
- 알고리즘형: 담보 없이 알고리즘으로 공급량을 조절해 가격을 유지하는 방식
세 유형 모두 안정성을 표방하지만, 그 안정성의 근거와 신뢰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걸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 UST를 '달러에 연동된 안전한 코인'으로 알고 투자했다가 2022년에 전 재산을 잃은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알고리즘형과 담보형의 차이조차 모르셨습니다.
테라·루나 사태가 남긴 교훈, 디페깅 리스크의 실체
2022년 5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 UST(테라USD)가 단 72시간 만에 1달러에서 0.1달러 이하로 폭락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디페깅(De-pegging)입니다. 디페깅이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기준 통화인 달러와의 연동이 끊어지며 급락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약 4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50조 원이 넘는 가치가 증발했습니다.
당시 많은 분들이 '알고리즘형이라서 그렇지, 담보형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담보형 스테이블코인도 준비금의 구성과 유동성이 핵심인데, 그 내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테더(USDT)는 오랫동안 준비금의 구체적인 구성을 공개하지 않았고,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부터 2021년 준비금 허위 표기로 약 4,1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전력이 있습니다(출처: 미국 CFTC).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저는 스테이블코인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준비금 증명(PoR, Proof of Reserve)입니다. PoR이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실제로 충분한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음을 제3자 감사 등을 통해 증명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발행한 코인만큼 돈이 진짜 있다"는 걸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절차입니다. USDC를 발행하는 서클(Circle)은 매월 독립 감사 기관의 검증 보고서를 공개하는 반면, 모든 발행사가 이 수준의 투명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습니다.
코인런(Coin Run)도 반드시 이해해야 할 개념입니다. 코인런이란 시장 불안이 커졌을 때 투자자들이 동시에 스테이블코인을 법정화폐로 상환하려는 집단적 인출 사태를 말합니다. 전통 금융의 뱅크런과 구조가 동일합니다. 2022년 테라 사태 당시 이 코인런이 연쇄 붕괴의 방아쇠가 됐습니다.
규제는 어디까지 왔고, 투자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글로벌 규제 흐름은 이미 방향을 잡았습니다. 유럽연합은 MiCA 규제(Markets in Crypto-Assets)를 202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 중입니다. MiCA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해 인가제 도입, 준비금 100% 보유 의무, 정기 공시 의무를 부과하는 포괄적 가상자산 규제 체계입니다. 미국에서도 연방 차원의 스테이블코인 법안 논의가 진행 중이며, 한국 역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허용 여부를 두고 정책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규제가 강화된다는 것은 투자자 입장에서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규제 아래에서 운용되는 스테이블코인은 신뢰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할 때 아래 기준을 반드시 확인합니다.
- 준비금 증명(PoR) 보고서가 정기적으로 공개되는가
- 발행사가 금융 당국의 인가 또는 등록을 받은 기관인가
- 알고리즘형인지 담보형인지 명확히 구분되는가
- 준비금이 현금·국채 등 고유동 자산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해외 송금, 탈중앙화 금융(DeFi) 서비스에서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편의성 뒤에 준비금의 불투명함이 숨어 있다면, '안정적'이라는 이름은 허울에 불과합니다.
투자에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보유한 스테이블코인의 준비금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누가 감사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2022년 이후 체득한 가장 값비싼 교훈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고: 소셜코리아 - 스테이블코인 논쟁에서 놓치고 있는 화폐 권력의 민주적 통제